- KAI·한화·현대重, 자체 제작하며 숱한 시행착오···새벽 출근에 밥먹듯 야근
"공정 하나하나 순탄한 적 없어···궤도 안착 소식에 안도와 쾌감"
누리호 2차례 도전만에 발사 성공, 2조 투입 자체 개발 12년 3개월만
성능검증위성 700km 궤도 올려 '세계 7번째'로 위성 발사기술 확보
[서울투데이=이경재 기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마침내 우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지난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는 성능검증위성을 초속 7.5km로 700km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1조9572억 원을 투입해 개발에 착수한 지 12년 3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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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됐다. 누리호는 이륙 15분 45초 후 위성모형을 고도 700km 궤도에 초속 7.5km로 안착시키며 임무에 성공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
이는 1992년 국내 첫 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한 지 30년 만, 2002년 국내 최초 액체로켓 'KSR-Ⅲ'를 발사한 지 20년 만에 자체 기술로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는 발사체 기술을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인도,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7번째'로 확보했다.
이날 누리호는 1단 엔진 분리, 페어링(위성 덮개) 분리, 2단 엔진 분리, 성능검증위성과 위성 모형 분리 등 정해진 비행 계획을 완수했다. 누리호가 쏘아 올린 성능검증위성과의 첫 교신도 발사 후 42분이 지나 예정대로 남극 세종기지와 이뤄졌다.
누리호는 지난해 10월 첫 발사에서 3단 엔진이 계획보다 일찍 꺼지면서 위성 모형을 초속 7.5km의 속도로 궤도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 2차 발사도 순탄치 않았다. 기상 상황으로 발사일이 한 차례 연기됐고, 예상치 못한 1단 엔진 산화제 탱크 레벨 센서 문제로 한 차례 더 미뤄졌다.
누리호 개발을 실질적으로 책임진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앞으로 더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제 한국이 우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누리호의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 제작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의 김종한 추진기관생산기술팀 차장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기술을 현장에서 부딪히며 습득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힘들었습니다"라며 제작과정을 이같이 돌아봤다.
1957년 인류의 우주 개발이 시작된 이후 강대국의 전유물이던 '우주의 문턱'을 한국이 넘는 데는 65년이 걸렸다. 하지만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우주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 남짓에 불과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7번째로 1500kg급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에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김 차장과 같은 민간 영역의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한화에어로는 550평 규모의 경남 창원사업장 발사체 엔진조립동에서 누리호에 탑재될 엔진을 제작했다. 누리호 1기에는 75톤급 엔진 5개, 7톤급 엔진 1개 등 총 6개의 엔진이 탑재됐는데 한화에어로가 모든 엔진의 제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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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됐다. 누리호는 이륙 15분 45초 후 위성모형을 고도 700km 궤도에 초속 7.5km로 안착시키며 임무에 성공했다. [고흥=사진공동취재단] |
누리호에 탑재된 엔진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설계하면 한화에어로가 조립하는 방식으로 개발·제작됐다.
순수 자체 기술로 누리호를 개발·제작한 만큼 한화에어로 엔지니어 22명은 어디 하나 물어볼 곳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458개 엔진 조립 공정(75톤 기준)을 하나하나 밟아갔다.
자동화 설비 없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제작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각종 치구(조립도구)와 실험 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엔지니어들은 제작과 실험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야근도 밥먹듯 했다.
김종한 차장은 "첫 엔진을 조립할 때 설계했던 것과 실제 공정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며 "조립 순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작업을 진행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누리호 프로젝트에서 체계 총조립 부문과 1단 추진제탱크 제작 부문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발사체체계팀원들 역시 2014년부터 사업에 참여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나갔다. KAI는 2차 발사를 위해 발사체체계팀원 22명을 고흥에 파견했다.
KAI 발사체체계팀은 탱크 부품을 제작할 때 작업 조건을 찾느라 공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75톤급 엔진 4개가 장착되는 1단부 후방상부조합체 조립작업 중 협소한 작업공간에서 복잡한 구조물 사이로 수많은 추진공급계 배관과 전기 하니스 및 각종 센서들의 신호선을 하나하나 연결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임감록 발사체체계팀 팀장은 "어떤 때는 제작도면에 요건을 명시하기 어려워 일단 만들어 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요건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공정 하나하나가 순탄하게 지나간 적이 없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극복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지난주 예정됐던 누리호 발사가 갑작스레 연기되고 재발사가 결정됐을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한다.
임감록 팀장은 "날씨와 부품 문제로 발사가 두번 연기되며 새벽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기를 반복했고, 몸은 피곤한데 잠은 잘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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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누리호 발사 성공 직후 감격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모든 스트레스는 발사 성공과 함께 해소됐다. 그는 "발사 시각이 임박해지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가슴은 지난번보다 더 뛰었다"며 "위성이 무사히 궤도에 안착했다는 소식들 들은 뒤에야 안도의 한숨 뒤로 짜릿한 쾌감이 밀려왔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한국형발사대 현장팀 10명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남 고흥군에 파견돼 누리호 제2 발사대를 세우며 구슬땀을 흘렸다. 근무지가 아닌 타지에서 장기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한상용 현대중공업 한국형발사대현장 책임매니저는 "설비 단위 별로 업무가 진행돼 각 설비에 요구되는 조건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항우연과 KAI, 한화에어로 등 참여기업의 노력으로 액체엔진 시험 설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엔진 구성품 시험설비(6종), 엔진 시스템 시험설비(3종), 추진기관 시스템 시험설비(1종) 등 총 10종의 설비를 확보됐다. 누리호 개발 초기에는 러시아 등 외부 시험설비를 임차해 제한적으로 시험할 수밖에 없었다.
또 현대중공업의 노력으로 발사대시스템 공정기술의 국산화율 100%를 달성했다. 발사대 건립에 필요한 모든 공정이 국산화된 것이다.
KAI는 올해 진행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에 주관기업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내년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에 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해 우주발사체 제작 및 발사서비스 역량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발판으로 향후 2030년부터는 민간산업체 주도의 상용 우주발사체 제작 및 위성 발사서비스 시장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에어로도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 등 후속 사업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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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호는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를 출발해 15분 45초 만에 700km 궤도에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형을 성공적으로 내려놓고 임무를 마쳤다. |
이경재 기자 press@sul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