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비 아니라 고구려·신라 관계 변화 설명
"3차원 스캐닝 기술로 비문 추가 판독 연구"
[서울투데이=홍정인 기자] 충북 충주에 있는 고구려비가 영토를 구분하는 경계비가 아니라는 학계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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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 고구려비. [문화재청 제공] |
23일 학계에 따르면 최근 3차원 스캐닝 기술로 진행한 재판독 과정에서 고구려의 모인(募人)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내용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내용은 충주학 연구소 창간호에 실린 '충주고구려비의 판독과 건립 목적(나유정)'이라는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충주비 발견 40주년을 맞아 진행한 재판독 작업을 계기로 고구려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학자는 먼저 고구려비 서술 내용에 있는 궤영과 우벌성, 고모루성 등 주요 장소 3곳이 충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달았다.
이 중 '궤영'은 고구려왕이 신라 매금으로부터 복속 의례를 받는 장소, 고구려가 중원으로 남진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보는 견해 등에서 충주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비석 건립 목적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게 비문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외교적 사항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비문으로 남기는 건 어렵다고도 했다.
고구려는 신라와 동맹 관계였는데, 신라 우벌성 함락을 계기로 관계가 틀어진 뒤 기존 방식이었던 신라 영토에서 모인이 어렵게 됐다. 인력 동원 방식 문제에 직면하게 됐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라는 게 학자의 설명이다.
결국 충주비는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 변화에 따라 발생한 고구려의 인력 동원 문제를 언급하고 해결책까지 서술한 비석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국보 205호인 충주 고구려비는 1979년 예성문화동호회 회원들이 발견했다. 비문에는 528자가 쓰여 있는데, 마모가 심해 해석이 어려웠다.
그동안 충주 고구려비는 한반도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펼치며 영토를 확장한 뒤 국경에 세운 기념비로 알려졌다.
이미영 기자 press@sultoday.co.kr